문학작품 또한 민족 계몽을 위한 수단의 한 부분으로써 인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이러한 지식의 추구만으론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를 고쳐 낼 수 없다는 인식에 민족적인 개인을 벗어나 그것을 초월한, 그 각각의 주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자각을 한 것이 바로 동인들이다. 동인지가 나타
폐허》지에서 염상섭·김억 등의 문인들은 퇴폐문학의 지양을 부르짖기도 하였으나 당시의 시인들, 특히 오상순·황석우 등의 작품에는 퇴폐적 ·허무적 ·유미적 색채가 짙었고, 이런 경향이 마침내 낭만주의 문학의 온상을 이루게 되었다.
1922년 1월, 동인지 《백조》가 발간되어 홍사용·박종화·현
동인지문학이 내포하고 있는 가장 큰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인지 문예잡지들의 발행부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중심 독자 또한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문학의 대중적 유통이라는 측면에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잘 팔렸다는 창조의 발행부수가 2000부를 넘지 못했던 것은 주체들의
홍사용, 박영희, 이상화, 나도향, 현진건 등이 그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홍사중과 김덕기가 자금을 출자하여 문화사에서 발행하였다. 『백조』지의 문학적 특색에는 화려한 수사와 애매한 비유, 암울한 성격의 제시 등이 있으며 흔히 낭만주의로 분류된다. 이들의 작품에서 부당한 밖의 세계와 적극
동인지문학의 담당자들은 명목적이든 암묵적이든, ‘반 춘원’이라는 기치 하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朴賢洙.1920년대 초기 소설의 근대성 연구 : 김동인, 염상섭, 나도향, 현진건을 중심으로 / 成均館大學校 大學院 : 現代文學專攻, 1999.
문학을 ‘예술을 위한 예술’로 보고 작품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