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文)과 고문(古文)
① 금문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진시황의 분서갱유 후에 많은 지식인들은 은둔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였고, 많은 경서들이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에 한대에 들어 유학자들은 구전과 기억에 의지하여 실전된 경서들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때 구전되는 지식들을 끌어 모아
今文尙書)라 불리는 계통과 공자의 집 벽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고문상서(古文尙書)의 두 계통이 전해지는데 고문상서는 춘추시대의 문체인 금문과는 대비되는 고문으로 쓰여서 고문상서라 불리게 되었고 인정을 받지 못하여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함께《서
전국문자의 정의
춘추시대 말기 – 진(秦)나라의 통일 전까지 각 지역에서 유행하던 문자.
고문, 혹은 육국문자 ▪ 육국고문 이라고 불리기도 했음.
고문이라는 명칭은 한나라 당시의 예서문자를 금문(今文)이라고 부르던 것에 대응하여 붙여진 것.
전국문자 vs 진나라 문자
전국 시대 문자
(明體適用) 주장
- 명대 중엽의 심학이나 청대 중엽의 고증학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 청대 말기에 가면 금문학今文學 운동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서양 철학의 수용 등 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전통 철학은 마지막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3) 청대(1644~1911) 철학
청대 철학
今文學)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고문 경전이 발굴되고 수집되자 고문학이 유행하게 되었다. 정진일,『중국철학사 Ⅱ』, 조선대학교 출판국 - 10p
그런데 고문학은 대체로 문자의 훈고에 힘쓰게 됨으로써 훈고학으로 발전되어 갔으며, 후한에 이르러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2. 동중서의 사상
1. 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