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한자가 창제된 이후에도 문자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구어는 우리말이었으며 문어는 여전히 한자로 존속하였다. 특히, 상위계층인 사대부들은 한글을 천시하고 한문을 높이 평가하여 한자생활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이들의 이러한 가치관과 문화가 반영된 것이 바로 한문학이
南孝溫)의 문집인 ≪추강냉화 秋江冷話≫(1477)에 의하면 영동민속에 매년 3·4·5월 중에 택일을 하여 무당들이 산신을 제사하는데, 3일 동안 큰 굿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추강냉화≫의 기록은 반드시 단오제를 지칭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시기 중 5월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 의식이 대관령
南孝溫) 같은 이의 경우를 방외형(方外型), 이와 달리 온건적 자세로 향촌에 묻혀 살려했던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같은 이의 경우를 처사형(處士型)으로 나눌 수있다.
방외형은 격렬한 비분(悲憤), 과격한 비판의 자세가 체제에 용납되지 못하므로, 결국 현실권 밖으로 자기를 이탈시켜 버린
서거정과 정도전의 문학관
<서거정(徐居正)의 생애 및 남긴 저서>
서거정(1420~1492)은 조선 전기의 문신문장가로,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또는 정정정(亭亭亭)이다. 권근의 외손자로,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