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500여년은 한문학이 가장 번성한 시기로, 한문학은 곧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한문학의 시대구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조선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조선전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누는 방법이 있
한편, 당시의 특색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측전무후 때부터이다. 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왕으로 역사가 중에는 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의 치세 동안의 화려하고 아늑한 기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 4걸이라 불린 왕발, 노조린, 낙빈왕의 네 사람과 심전기, 송지문 등은 이 시절의 시인이다
조선전기에 일정한 유형성을 띠며 나타난 문학사조들이 있는데, 크게 관각문학, 처사문학, 방외인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조선 전기 문학을 대표하며, 그 시대의 문학사의 흐름을 대변한다. 조선 전기의 문학은 사대부의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관각, 처사, 방외인 문학 역시 사대부를 중
조선 건국의 위엄과 정통성을 기리는 훈구파는 왕조사업을 이룩한다면서 문학의 장식적인 기능을 중시하고 수준 높은 한시를 쓰는 관인문학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5세기 말 이후, 점차 유미적, 퇴영적 색조를 띠면서 위세를 잃어갔고 16세기에는 산림 처사로써 자신의 은거를 자위하는 은일가사에서부
문학사’라고 표현하기를 주장한다. 또한 그것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그만의 문학사를 주창하는데, 바로 ‘우리문학사’라는 개념이다. ‘우리문학사’의 탄생은 북쪽에서 쓰는 ‘조선문학사’와 구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한민국 시대에 쓴 문학사’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