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學 즉, 孔孟儒學이 그 時代思潮에 적응하기 爲해 그 理論과 體系를 새로이 定立한 것이다. 그러므로 朱子 性理學의 內面的 本質은 孔子의 「殺身以成仁」하는 仁의 道義精神과, 孟子의 「사생이취의」 하는 義의 義理精神이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宋明代에 이르러 儒學의
위해서는 공맹(孔孟)의 유학과 같은 옛 것만을 외칠 순 없었다. 단지 수양(修養)과 위정(爲政)을 위한 학문을 넘어 당시의 지배적 사상인 도교와 불교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유학은 사람들에게 단지 수양(修養)과 위정(爲政)을 위한 학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孔孟)의 진정한 정신, 진정한 의미, 진정한 학술을 타도하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이어서 그는 “도덕전통의 해방, 비유가사상의 제창, 서양 문화학술의 수입과 파악은 모두 유가 사상의 새로운 발전을 촉진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국 현대의 유가사상의 발전 혹은 유가 사상의 새로운 전개는 중국
孔孟)의 고전유학이라기 보다는 주자에 의해서 새롭게 정립된 신유학(新儒學), 즉 성리학(性理學)이었으니 유학의 성 이해를 논함에 있어서도 이 둘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될 것이다. 신유학은 공맹의 가르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가장 현저한 차이점은 예를 들면 사상적으로 불교와 도가, 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