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사상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가치혼란 문제의 대응책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Ⅱ. 한국 義理思想의 연원
朝鮮朝 五百年 동안 思想의 主軸을 이루어 온 朱子의 性理學은 宋代에 이르러 새로히 形成된 것이다. 본래 性理學은 先進儒學 즉, 孔孟儒學이 그 時代思潮에 적응하기 爲해 그 理論과
의리학(義理學)의 학통을 세웠고, 그 학통은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 그리고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면서 기묘사화을사사화 등의 희생을 겪었으나 도학의 의리정신은 면면히 계승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6세기에 들어서였으며, 송대의 성리학이 이 땅에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당시 조선을 둘러싸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청 일의 세력관계 속에서 외국(청)의 무력개입에 의해 패배하면서부터 민씨정권의 대외의존성은 더욱 심해졌다. 정치적으로는 청이 우세한 가운데 경제적 침략을 둘러싼 청 일의 각축전 또한 치열하였다. 특히 일본은 청이 임오
다산은 영조 38년(1762) 6월 16일 아버지 나주 정씨(羅州 丁氏) 재원(載遠)과 어머니 해남 윤씨(海南 尹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주 정씨는 처음 본관을 압해(押海)로 하였으나 영조 때 나주로 본관을 바꾸었다. 시조(始祖) 고려 검교대장군 정윤종(丁允宗)으로부터 6세(六世) 공일(公逸)까지 압해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