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규경의 학문형성 배경
1) 가학(家學)의 전통
이규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의 집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조부인 이덕무와 아버지 이광규는 모두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중인 신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신병주, 『조선중,후기 지성사 연구』, 새문사, 2007, p.315
아마 오늘날
家學)을 전수받고 4세 때 이미 글을 깨우친 천재로 어린 시절부터 학자가 되는 꿈을 가졌다. 20세에 관악산 암자에서 혼자 [맹자]를 읽을 때 그 소문을 들은 승려가 도둑으로 변장해 유성룡의 담력도 시험하였다. 이때 굳은 의지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며 글을 읽고, 승려는 그가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
있다. 아버지 김익겸은 일찍이 1637년(인조 15)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까닭에, 형 김만기와 함께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며 살았다. 윤씨부인은 본래 가학(家學)이 있어 두 형제들이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한 모든 정성을 다 쏟았다고 전해진다.
家學)으로 계승해 온 전형적인 학자집안 출신인 그는 18세에 수재, 19세에는 거인에 합격하여 촉망받는 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1903년 장병린(章炳麟)·채원배(蔡元培) 등 애국학사(愛國學社) 멤버들과 상해에서 접촉한데다 회시(會試)수험 실패 등을 계기로 벼슬 길을 포기한 그는 혁명파의 진
家學)을 통해 역사와 학문에 대한 자질을 닦을 수 있었다. 조부가 별세(1735)한 이후 광주로 이주하여 생활의 안정을 찾고 학문에 매진하였고, 이후 관직 생활을 위해 상경한 때를 제외하고 말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광주에 거주한 이후부터 순암은 『성리대전』, 『심경』 등을 섭렵하며 본격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