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한류열풍으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지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경우 한국어의 어의(語意)표현이 매우 다양하여 배우기가 힘든다고 한다. 또한 모음의 ㅏ와 ㅓ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바뀌게 되니 정확한 어의 쓰임이 요구된다.
2.2. 제2기(1912~1925) - 조선에서의 재야 연구 시기
1911년 조선총독부에 학무국 편집과속 겸 편집서기로 부임하여 조선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17년 5월에서 1919년 6월까지는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사와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교수를 겸임하였고, 1919년 6월에는 조선총독부의 교과서 편수관으로 임명되어
Ⅰ. 서론
방언 연구의 성과는 실제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는 오구라(小倉進平)적인 악습(惡習)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1970년대의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구조방언학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각 방언도 저마다의 체계를 갖는다는 인식 아래 소방언권이 독자적으로 연구된
小倉進平,1929)는 이두라는 명칭은 조선조에 들어와서 생긴 이름이고 고대에는 향가, 인명, 지명을 표기하는 한자와 이두까지도 포함하여 향찰이란 명칭으로 불렸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희승(1955)은 이두의 정의에 광의와 협의의 둘이 있다고 보았는데, 김윤경(1938)과 같이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우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