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940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기까지,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은 어느 문자의 계통을 이어받아서 창제되었는지,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무엇인지를 밝혀 보려고 한 설명이나 학설이 여러 갈래로 주장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본』의 제자해에서
正音二十八字 各
중국 글자(한자)
Ⅰ. 서론- 한자의 기원
한자가 처음 만들어진 것에 대하여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설(傳說)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 황제(黃帝)시대에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 창힐(蒼頡)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문자를 창제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이 전설은 한 나라 때 이미 전해져 있
易理 기원설(태극 사상 기원설)이 있다. 상형설을 보면 발음기관 상형 기원설, 우리 고유 가옥의 창문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창문 상형 기원설, 한자의 제자 방식의 기본이 되는 육서법을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起一成文圖 기원설 등이 있다. 이상 설명한 것 이외에도 훈민정음의 기원설에 대해 끊임없이
易理)의 현상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있었으며 자칫하며 ‘왕조 영속’이라는 지상 과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세종으로서는 건국 이래 3대에 걸쳐 반복된 ‘윤통’의 모순적 현실을 한꺼번에 해결한 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대 임금의 일을 악장으로 가송할 수 없다’는 세
○ 유가의 천명에는 정치적 천명과 윤리적-도덕적 천명과의 두 가지 천명이 있다. 전자는 인성 밖에 존재하는 천명이지만, 후자는 인성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후자인 것이다.
다산은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다. “천명에는 賦性之命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