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귀교환(人鬼交驩) 모티프란?
→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의 만남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모티프가 많이 쓰인 이유는 내세에 관한 한국인의 믿음 때문.
「만복사저포기」에서도 죽음이 지닌 문제성 때문에 현실과 비현실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그 만남을 통해서 원한을 해소할
Ⅰ.서론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최남선(崔南善)이 그 텍스트를 처음으로 소개한 이후로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15세기라는 이른 시기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으며, 그 서사화의 수준 또한
生者)와 사자(死者)가 공존하는 우리의 고유한 사생관의 공간을 삶과 죽음을 잇는 불교적 커뮤니케이션 기호로 체계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만적/ 살다/죽다, 피(血書)/재(燒身), 도망/희생, 이기주의/이타주의와 같은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의 이항대립(二項對立)으로 구체화 되어 있다.
生者)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또한 행동이 잔인하지도 않는다. 역시 살인마에서도 크게 잔인한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방송법이 엄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지금과는 자극의 크기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영화나 방송은 예전에 비해 자극의 크기가 커졌고 자극을 받아들이는
生者에서 亡者로 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이 상징적인 원리로 주술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던 가면이 점차 연극과 같은 예술에서 오락적인 기능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놀이마당이 지니는 공간적 가변성을 살펴보면, 마당극에서의 마당은 일터, 쉼터, 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