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溪李滉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 불릴 정도로 儒家사상을 총정리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몇 차례 벼슬길에 오르긴 했지만, 본디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나라의 부름이 있더라도 관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외직(外職)을 자청하여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생활을 즐겼
理通氣局說의 입장에서 人物性을 해석
性은 理와 氣의 合, 理가 氣속에 있어야 性이 됨
理는 독립적으로 性이 될 수 없음
人物性을 다른 것으로 파악
박세당,『思辨錄』: 인물성이 다른 이유 해석
권상하와 김창협이 조목별 검토, 인물성동이론 쟁점 대두
권상하 문하의 한원진, 이간 등
退溪의 학문이 21세기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얼핏보면 상당히 황당무계한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전환'이라는 말이 단순히 21세기를 맞이한다는 숫자상의 변환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고 그리고 이러한 전환과정에서 퇴계의 학문이 어떻게 적용되어
.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예안의 도산(陶山)으로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① 권근 (權近, 1352~1409) : 호는 양촌(陽村)
1. 조선시대 유학의 문형
→ 조선개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정도전과 함께 성리학을 기초로 교육의 기틀을 마련
→ 관학을 정비
→ 성리학에 바탕한 교육사상을 체계화
→ 불교와 도가사상을 이단으로 구분하여 배격 (효제충신과 수기치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