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한국의 선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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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 한국의 선비정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선비정신이란
1. 선비정신의 의미
2. 선비정신의 표본
(1) 退溪 李滉
(2) 栗谷 李珥
(3) 南冥 曺埴
(4) 靜菴 趙光祖
(5) 茶山 丁若鏞
Ⅲ. 선비정신에 대한 평가
1. 비판론
2. 예찬론
Ⅳ. 선비정신의 현대적 의의
Ⅴ. 결론
본문내용
2. 선비정신의 표본

도학 군자로 일컬어지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하여, 산림유(山林儒)의 표상이 되어 온 남명 조식, 시대를 개혁하고자 했던 정암 조광조, 목민관의 임무를 강조한 다산 정약용 등의 지고한 선비정신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관으로 한국 사상과 철학의 중요한 맥을 형성하였다.

(1) 退溪 李滉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 불릴 정도로 儒家사상을 총정리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몇 차례 벼슬길에 오르긴 했지만, 본디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 나라의 부름이 있더라도 관직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외직(外職)을 자청하여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생활을 즐겼다. 일찍이 그는 ‘주자전서’라는 책을 읽고 여기에 몰두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마침내 대성하여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사방에서 학자들이 배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철저한 사색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한 그는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여 어디까지나 독단과 경솔을 배격하였다.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6, 1991.

고위 관직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던 당시, 노년의 퇴계는 위기지학(爲己之學) 지향이라는 유학 본ㄹ의 정신에 따라 오직 자기 성찰과 의리탐구에만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70의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나면서도 유언으로 예장(禮葬)을 사절할 것이며,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선비정신을 실천한 상징으로 오늘날 사회발전 원동력으로 충분히 귀감이 될 수 있다. 윤사순·고익진, 『한국의 사상』, 열음사, 1995.


(2) 栗谷 李珥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깊고 정성스러운 교육에 의해 사람됨에 있어서나 학문하는 데 있어서 나무랄 데 없는 인격을 갖추며 성장하였다. 율곡은 학문의 목적이, 안으로는 자신을 수양하고 밖으로는 살기 좋은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하여 실(實)을 강조하였다. ‘실’이란 “아침이 다 지나도록 밥상만 구경하고 배 한 번 불러 보지 못하고 있듯이, 빈 말뿐이고 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어떤 학문이나 이론도 실지로 소용되고 거두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율곡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정책으로는, 인물 중심으로 벼슬에 등용할 것, 백성들의 무거운 세금을 줄여 줄 것, 천민들에게 양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 언로를 열어 줄 것,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10만의 군대를 기를 것 등으로서, 이는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사랑한 율곡의 한결같은 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교육부, 『중학교 도덕 1』,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8.

이론과 실천을 조화시키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려고 애썼던 율곡의 삶과 업적은 참다운 학자의 길,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3) 南冥 曺埴

남명 조식은 합천의 삼가에서 탄생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실천 유학을 역설하였으며, 평생 산림에 은거하며 성리학을 연구하여 敬과 義로 집약되는 독특한 학문을 이룩하여 사림의 종사로 추앙받았다. 선생은 평생동안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선비정신에 바탕한 산림처사로서 민본주의 정치사상으로써 잘못된 국정은 과감히 비판하고 절실명쾌한 대책을 제시하여 사림의 언로를 열었다. 또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실학의 비조로 꼽히며,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과, 정치·학술계를 주도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우리 나라 교육사에 있어 가장 성공한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사화기로 일컬어질 만큼 사화가 자주 일어난 시기로서 훈척정치의 폐
참고문헌
교육부, 『중학교 도덕 1』,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8.
교육부, 『중학교 도덕 2』,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2004.
금장태,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조남국, 『한국 사상과 인간 존중』, 교육과학사, 1999
조선일보사, 『월간조선』, 2005. 11.
윤사순·고익진, 『한국의 사상』, 열음사, 1995.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6』,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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