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 부여와 고구려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Ⅰ. 序論
예맥 :우리 민족의 형성과 起源, 그리고 古朝鮮 扶餘와 高句麗 주민의 正體性을 논함에 있어 그 출발점
집단에 있어 正體性(Identity)문제의 핵심
동아리 내부의 同質性의 확인과 다른 집단과의 差別性을 認識함에 있다.
따라서 本稿의 주제인 ‘濊
우리 나라 청동기의 (遼寧)기원은 1960년 遼寧省 十二臺營子 무덤에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이 朱 貴에 의해 발표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세형 동검의 先行 형식으로써의 요령 지방의 비파형 동검이라는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1960년 초 중국 요령지방의 청동기 문화는 한국 청동기 문화
아득한 옛날에는 오늘의 韓半島(한반도)와 滿洲(만주)에 걸친 넓은 지역에 여러 언어들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이들은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여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옛 史書(사서)에 토막 기록들이 더러 전하여 이 언어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却說豫州刺史劉?甫經?任, 聞魏司馬趙懷仁, 入寇武津, ?遣龍?將軍申元德, 出兵?截。
각설예주자사유면포경이임 문위사마조회인 입구무진 극견요양장군신원덕 출병난절
각설하고 예주자사 유면이 겨우 임지에 이르고 위나라 사마 조회인이 무진에 쳐들어옴을 듣고 빨리 요양장군 신원덕을 보내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