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 부여와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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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맥 부여와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예맥 부여와 고구려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Ⅰ. 序論
예맥 :우리 민족의 형성과 起源, 그리고 古朝鮮 扶餘와 高句麗 주민의 正體性을 논함에 있어 그 출발점
집단에 있어 正體性(Identity)문제의 핵심
동아리 내부의 同質性의 확인과 다른 집단과의 差別性을 認識함에 있다.
따라서 本稿의 주제인 ‘濊貊 扶餘와 高句麗의 正體性’ 문제의 초점은 예맥에서 비롯한 부여와 고구려의 동질성 확인에 있다.
Ⅱ. 文獻에 나타난 濊貊
1. ‘東夷’ ‘Altai語族’
1) ‘東夷’
우리민족문화의 바탕을 底礎하였던 청동기문화가 中原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하동서설 자체가 중국 新石器文化 多中心的發展論에 의해 비판 극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2) ‘Altai語族’
우리 학계가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을 논할 때 東夷와 더불어 흔히 거론하는 것이 ‘tungus族’의 존재이다.
그러나 선진문헌상 나타나는 예맥 및 한대 이래 중국측 사료상의 부여 고구려 등의 우리 민족은 읍루 물고 말갈 등의 Tungus족과 준별, Altai어족 중의 한 민족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2. 한국학계에서의 ‘예맥’ 인식
먼저 예맥동종설
‘예맥’이라는 명칭은 예족과 맥족을 합친 범칭이 아님
‘맥족’인 고구려를 지칭
한대이후 ‘예’와 ‘맥’은 동일 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되는 실체. 개별적 존재
곧 ‘예맥’은 요동과 한반도 일부에 분포하며, ‘예족’의 住地는 길림송화강 및 눈강 유역 그리고 한반도 일부로 비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은 이들 예와 맥이 남쪽 ‘한족’과 더불어 한민족의 구성의 근간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3.北韓 및 外國學界에서의 ‘濊貊’ 認識
李址麟
본래 ‘북방족’인 예와 맥은 한 개 족속의 두 갈래로서, 신석기시대, 늦어도 B.C2000 여년 이전에 요동요서 지역에 정착했다고 본다
특히 그는 맥족의 실체 파악을 위한 전제로서 ‘秦 漢代 이전의 東胡=貊’이라 상정 , 맥은 처음부터 예의 지역 북방에 거주, 또한 그는 河北省에서부터 요동요서 일대에 걸치는 지역을 그 주지로 하던 예가 요동의 蓋平을 수도로하여 세운 국가가 ‘고조선’이었던 바, 이 예족이 ‘고조선족’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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