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된 문학이었다. 몇몇 곡조가 정해져 있고, 여기에 시조 작품이 개별적으로 대응되는 방식이었다. 이 때에는 시조 작품 그 자체보다 가락과 곡조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시조의 개별적인 고유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
윤선도의 생애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 생부모(生父母)를 떠나 양부모(養父母) 밑에서 지낸 것, ≪소학(小學)≫을 중시한 것, <병진소(丙辰疏)>를 올려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을 논박하다가 경원(慶源)으로 유배간 것, 인평대군(麟坪大君)과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왕자
고전시가를 이해하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장르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고전 시가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갈래들을 갈래별 이론, 사회적 상황 등과 관련지어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 즉,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국문학사의 흐름에 따라 문학사
은둔사상을 보탰고, 또한 난중에 성행하던 <어부가>, 이조 초의 <강호가>, 개작한 <어부가> 등을 집대성하여 3.4조의 음수율로 정착시켜, 가창에 절주한 연음체 노래로 발전시켰다고 했다. 따라서 고산은 국문학사상 단가의 일인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 <산중신곡>은 물론 이 <어부사시사>는 최고
가곡원류≫와 함께 3대 시조집의 하나이다. 책명은 한글로 모두가 ‘청구영언’이지만, 한자로 쓰면, ‘靑丘詠言’, ‘靑邱永言’, ‘靑丘咏言’ 등으로 표기된다. 김천택은 우리의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다. 따라서 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