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문학에서도 한문 고어 투에서 벗어나 국문으로 시조 창작이 시도되었다.
김천택이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던 조선후기에는 실학사상이 지배하던 때였다. 이 당시에 나온 작품들은 양반들의 공리공론, 허위의식에 비판을 가하며 현실사회의 문제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다룬 내용의 문학작품
시조의 창작과 가창에 전념하였던 자들이다. 그러나 여항시인과 가객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성과 동질성을 가지고 지속적인 교우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천택에게 <청지>에 들어갈 서문을 써 준 정내교, 김수장에게 7언 율시를 증정한 김시모 등이 여항시인이었고 김유기,
시조만이 살아남아 ‘현대시조’라는 이름으로 현대문학의 장르 속에 재편되어, 시의 한 장르로서 유일하게 전통문학의 명맥을 이어받고 있다. 성기옥․ 손종흠, 『고전시가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10, 262~263면.
즉, 시조는 조상들의 숨결을 담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창작되면서 가치
1. 시조의 정의
시조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서 발생하고 정제된 서정 시가로써 조선조의 전 시기와 개화기까지 생명력을 유지해 온 민족 시가이다. 즉, 한민족의 고유한 예술양식의 하나로서 국문학상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녀오는 시가형식의 시조이다.
그러나 ‘시조란 무엇인가’하는 물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김용철 김용철, 「진청<무씨명>의 분류체계와 시조사적 의의」, 138-141쪽, 『고전문학연구』16, 고전문학회, 1999
은 진청의 편찬이 김천택 단독의 작업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시조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배치하는 종합의 과정에서 다수의 공동적인 시각이 관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