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국들을 세웠고 이들 한국 계통의 소국들은 한반도에 있는 고국과의 연계를 유지하면서 백제, 가야, 신라 계통의 나라들을 유지해 갔다. 이 학설을 ‘분국설 分國說이라고 하는데, ’남선경영설‘이 일본의 한반도 남부지배를 주장했다면, 김석형은 오히려 일본열도의 소국들을 한반도의 나라들이 지
변한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한족을 정치상황에 따라 마한 ․ 변한 ․ 진한의 셋으로 구분한 것 중의 하나이고, 변진(변한)구야국을 비롯한 12소국을 통칭하여 쓰이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김해의 구야국 즉 가야국이 2~3세기 당시에 변한이라는 정치체에 속하여 있고 그 정치체는 가야를
1. 머리말
1) 가야사 연구의 현황
우리나라 고대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에 연구되어 야 할 대상 가운데 가야사 분야는 적지 않은 과제를 갖고 있는데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1990년대 이후 가야사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
가야의 주교섭대상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야지역에서도 구나한국이 금관가야로, 다시 말하면 삼한 소국단계에서 가야로 전환되는데 이 과정에서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국가 간의 통합이 가속화되고 금관가야가 그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가야지역에서 우월한 지
가야연맹에 대한 패권까지 넘보게 되었다. 진흥왕은 555년 10월 북한산에 순행하여 순수비를 세워 강역을 확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557년 국원을 소경으로 삼았으며 558년 2월에는 왕경인들을 국원에 이주시키고 방어하였다. 한강유역 경영을 마친 후 신라는 가야소국들을 병합하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