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지도 모르겠다. 채플린의 영화는 나에게 있어 결국 그 사회 속에 존재했던 영화였고, 그 사회와 충돌하면서도 스스로 사회와 타협했던, 모순적 비판을 가하고 있는 영화였다. 그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채플린에 대해서 관객의 입장에서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
서 론
비포 선셋은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비포 선라이즈 이후 그들의 뒤늦은 재회를 9년만에 영상으로 담아 놓은 감성적인 터치의 멜로드라마이다. 이번 작품은 전작의 감동에 비하면 매우 담담한 영상과 형식적인 평범함으로인해 재미나 감동면에 있어서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난장이는 평생을 난장이로 불리며 살아왔고, 결국 달나라에 쇠공을 쏘아 올리려다 끝내 꿈은 좌절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난장이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희는 난장이들이 살고 있다는 ‘릴리푸트 읍’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를 만들고 책상을 만든다. 이때 나무는 자연이고 종이와 책상은 '제2의 자연'
이다. 그렇다면 제2의 자연으로서의 문화란, 결국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편의
상 자연을 가공해서 인위적으로 바꾸어놓은 삶의 흔적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선천적 결핍존재로서의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더 잘
결국 이 영화에서처럼 인간은 극한 환경을 선한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이 실험상황에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이 있는가?
즉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은 감옥이라는 환경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 그 자체 때문인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서는 정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