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같이 식민도시가 갖는 일반적인 성향들을 바탕으로 조선의 수도이며 거대도시였던‘경성’과 대표적인 항구도시‘군산’의 근대도시화 과정을 각각 조사, 비교하면서 당시의 대략적인 도시일상의 모습과 대중문화, 더불어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의 근대도시경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북촌
남촌 중심의 개발 사업은 북촌지역의 한옥을 보존하게 함
인구집중 현상과 주택난의 가중
하천부지나 임야 등 관유지, 사유지를 무단 점거하여 거주하는 형태
고시정(현 후암동), 왕십리 등의 일대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것도 다 부질 없는 말이다. 이들은 생활난에 쪼들려 내외도 모르고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1000회 차 ‘수요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건립된 ‘평화비(소녀상)’는 ‘위안부’ 피해의 기억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기능하고 있으며 그 건립이 국내외 주요 도시로 확산하고 있고 학생,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의 자발적
문화연구,1992
위의 글은 레코드회사 문예부장과 바, 다방의 마담, 여급과 기생등 대중문화의 중심인물들이 서울의 치안담당자에게 서울에 댄스홀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개 탄원서 형식의 글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서양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댄스홀조차 통제되고 있었다. 위 글을
문화행정가들의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은 문화정책의 미래 발전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하고 나아가 지역발전의 강력한 추진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정책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일제식민시대에 문화재에 대한 자료조사와 연구가 시작되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