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의 계세(繼世)사상 때문이었다고 믿어진다. 이 때문에 벽화에도 사자(死者), 즉 피장자에 관한, 또는 그를 위한 생활 풍속이나 소망하는 바가 많이 담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의 국가적 성장에 따른 고구려문화 발전의 거울인 동시에 고구려인의 계세사상등 당대 고
고구려는 정복국가인 동시에 문화국가이다. 고구려는 기마를 이용한 우수한 기동력과 철기를 바탕으로한 국력을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한 동방의 강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여 유기 신집으로 대표되는 역사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고분벽화 등 수많은 문화 유
Ⅰ. 서론
고구려는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 만주 통구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럽고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패기에 찬 미술을 이루었다.
회화는 만주 집안현 통구 지방과 평
고구려의 배후를 공격하지 않고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면 고구려는 비록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화북지방에 그 서울을 둘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고구려이기 때문에 그 문화는 화북지방뿐 아니라 소위 북방 이민족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서역 및 남시베리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들였건 것
고구려의 무덤에는 크게 돌무덤과 봉토석실무덤 두 가지가 있는데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즉 봉토석실무덤의 현실의 벽면에는 두텁게 회칠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과 흑, 적, 청, 녹, 황, 백등 물감으로 벽면이 젖었을 때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법으로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