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연가7년명 금동 여래입상
국보 제119호. 높이 16.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구려불상조각의 제2기는 6세기 전반기의 불상조각을 말한다.
6세기의 불상들은 다소 발견되고 있는데 대게 전반기와 후반기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6세기의 전반기 양식이 고구려의 제2기 양식으로 550년 이전이며
Ⅰ. 고구려시대의 불상
삼국중 불교를 가장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대륙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수용과정에 있어서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불교조각은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교전래 이전의 고분의 벽화나 고구려
Ⅰ. 개요
미술이라는 대상을 자각하고 인식하는 의식의 주체를 미의식이라 한다면 한국미술을 인식하는 의식을 한국미의 미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미의 특질의 인식은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서 얻어지고, 한국미의 확인은 그 논리적인 미학적 성과에서 가능한데 지금까지 한국미의 미학적 규명을
불상은 부처의 형상을 회화·조각 등의 조형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불상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면 불상의 출현이 있기 전에는 예배 대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부처의 열반 후에 사람들은 함부로 부처의 형상을 본뜨거나 그의 얼굴을 조형한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들
고구려 3대 대무신왕 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왕에게 망하고, 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東明王(朱蒙, 성은 高)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 가지가 전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는 북부여의 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