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 발달된 하천과 남북으로 발달된 산맥으로 인한 지형상의 이유로 주요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요지에 중심 성으로 성곽이 분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이고 백제와 고구려와 당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던 역사적 상황에 기인 한다고 할 수 있다.
백제(百濟)로 고치고, 미추홀에 자리한 비류세력도 흡수하여 한강유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3세기 중엽 경에 와서 만한과 중국의 군현인 대방군(帶方郡), 낙랑군(樂浪郡)은 진한(辰韓) 8국을 분할하는 문제로 전쟁을 하게 되었다. 목지국이 주동이 된 마한은 대방군을 공격하여
작품으로 전거를 뚜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우리나라 회화로는 고구려 안악 3호분의 고분벽화가 그려졌던 4세기 전후의 연대로 보는 것이다. 고분벽화에 그려진 명료한 채색오과 필선묘사의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 이 시기에는 일반 회화도 그려졌음을 추측할 수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없다.
세기의 역사적 상황과 한일관계
6세기의 동아시아 세계는 두 개의 지역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남북조의 중국과 고구려, 백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중 지역세계’의 축이고, 둘째는 신라, 가야 그리고 일본열도의 규슈세력과 야마토정권이 구성하는‘ 한·일 지역세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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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전성기(진 흥왕~진평왕, 한강 점유)
7세기
여․수전쟁(612)
여․당전쟁(645)
백제의 멸망(660)
고구려의 멸망(668)
※ 부여의 대가(마가, 우가 등) 나 고구려의 대가(상가) 는 삼한의 견지와 읍차와 같이 최고 통치자는 아니었다.
2. 삼국시대
1) 국가의 분류 : 고대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