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만을 다뤄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정해지는 데에는 그 나라의 발전상과 내부사정이라는 변수가 거의 필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고구려의 대중국과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있어서는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두 나라간의 이해관계뿐만이 아닌 고구려 내부의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빼앗았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북아의 패자로써 그 세력을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떨쳤다.
외교를 통하여 남북조를 잘 견제해온 고구려였지만 6세기말 수가 남북조를 통일하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동시에 남쪽에 신라가 압박해온 상황에서
고구려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고구려는 신흥 강국인 위나라와의 우호를 위하여 오왕(吳王) 손권(孫權)이 화친을 위하여 보낸 사신의 목을 베어 위나라에 보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10年條.
또한 위나라의 공손연(公孫淵) 토벌에 군사를 지원하는 등 우호적인 외교정책을 펼
외교적으로도 국제적 승인을 통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강온 양면의 외교정책을 적절히 구사하여 발해는 이미 고왕 대조영대에 이미 '내건국자호진국왕...진득부여 옥저 변한 조선 해북제국'({신당서}[발해전])한 것으로 보아 이미 상당한 세력 팽창을
중국이 2002년부터 200억 위안(약 3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추진 중인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현재의 중국 국경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만들어 현재 중국의 영토와 지위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1000편이 넘는 고구려·발해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