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회통론자(會通論者)로는 서산 휴정(西山 休靜)을 들 수 있다. 그는 유(儒) ․ 불(彿) ․ 도가(道家)에서 추구하는 진리가 결코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 억불정책으로 침체되어 있던 교세(敎勢)를 회복해 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휴정은 교(敎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김구용(金九容),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등을 학관으로 채용하며 유학의 발전과 후진 양상에 기여하였다. 이로부터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개혁적 성향이 강한 이들 문신들은 이후 조선의 지배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말도 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의 상황이 갖 제정일치의 시대를 벗어나는 시점에서 천자가 갖는 천제(天際)에서의 절대적 권위가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 의, 예, 지'를 강조하였으나 공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주나라의 권위가 더욱 떨어져 사실상 각 졔후들이 패자의
조선시대의 백성들이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
성리학적 명분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생한 말이 『논어』에 나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이다. 이 말은 공자의 핵심사상으로 불리는 정명사상인데,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란
사상에 있어서도 날카로운 인식을 가졌다. 중세 동아시아 철학의 종합인 성리학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하여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동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후 성리학을 둘러싼 학문적 성향이 이념적 성향을 보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