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한반도의 다른 어느 나라 또는 시기보다도 강한 화북 미술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 화북에서 일어났던 북방 유목민들의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예리하고 율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북방적 강렬한 역동적인 성격은 고구려의 와당 문의 처리, 고분벽화의 선 등에 잘
신라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했지만, 유물의 종류와 수가 매우 적으며, 또 불교의 火葬 풍습 등으로 인해서 자료 자체가 많이 없는 탓에 일단 빼기로 한다. 참고된 자료는 윤세영의 {고분 출토 부장품 연구}라는 책인데, 그 밖에 자료가 있을 수 있으나 주로 미술사적인 연구서가 대부분이며, 또 있어도 윤
신라 효공왕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曇空)선사가 13년간
의 공을 들여 칠불사의 선방이었던 벽안당(碧眼堂)의 방고래를 가로 세로
각 8m 크기의 버금 아(亞)자 모양으로 만들어 그 위에 구들을 얹혔다는데
서 유래한다.
아자방은 한꺼번에 50명의 스님들이 참선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불교의 성행으로 백제 각지에서도 화장(火葬)을 했었던 것 같으나, 부여읍 중정리·염창리 등에서만 뼈단지가 발견될 뿐이다.
Ⅱ. 백제의 고분미술
1. 백제 왕의 금관 장식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왕의 금제 관식(金製 冠飾)으로, 금판(金板)을 예리한 도구로 도려내어 만든 것이다
1. 의복의 기원
인간이 의복을 착용하기 시작한 정확한 연대와 의복 착용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의 의복의 기능을 생각해 보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이나 그림, 벽화 등을 통하여 추측해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의복은 환경의 일부분으로 한랭한 기후나 폭염으로부터 체온을 유지하고, 해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