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예술을 선두로 예술전반에 걸쳐 출현한 바로크 양식은 문예에 있어서도 이탈리아의 마리노(Giambat-tista Marino), 스페인의 공고라(Luis de Gongora y Argote), 독일의 그리피우스(Andreas Gryphius), 그림멜스하우젠(Christo-ffel Grimmelshaussen) 등의 작품에 나타났다. 그 특색으로는 피안에의 희구와 현세주의, 금욕과 향
작품을 써냄으로써 다음 세대의 시민극을 예고했으며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1779) 같은 바이마르의 독일 고전주의 관념극의 선구적 작품을 낳았다. 그는 프랑스 문학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영국 문학에 관심을 가졌고 독일 본연의 창조성을 추구하는 길을 튼 사람이었다. 또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
예술의 장엄한 창조력의 감퇴에서 나타난다. 르네상스 시대의 부유한 이들의 세속적 예술에 대한 요구와 예술가의 새로운 자유, 모범적 고대 문명 그리고 이 시대에 자란 이들이 갖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이 자극제가 되어 나타난 거장들 이후의 예술가들은 모방과 답습만을 일삼았다.
이
작품 모방에 관한 고찰](1775)과 [고대미술사](1764)등이 있다. 그는 고대예술 특히 조형예술을 타당한 경전으로 찬미하며 절도 있고 조화로운 그리스 예술과 로마예술에 대한 숭상을 제기했다.
칸트가 없었다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전체의 정신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계몽주의의 세계상
행동이 서로 일관성 없게 그렸고, 실험적인 사건 구조는 세인들의 이해를 받지 못했고 당대 문단을 지배하던 괴테의 반감을 삼으로써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러나 낭만적, 무구속적인 격정과 냉정, 명확한 조형의사와의 불가사의한 융합을 성취함으로써 사후 독일 시인의 최고의 위치를 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