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정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 후 서양지식에 대한 적대감은 호기심이 의심을 압도하고 반기독교 감정도 시간이 지나 무디어지면서 점차 사라졌다. 검열이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미술처럼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들이나 의학이나 작도법(作圖法)처럼 유용한 것들은 검열이 완화되었다.
문화에 의해 이미 개혁된 상태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동도서기론을 주장했는데 동도서기론은 ‘동양의 정신을 유지하고 서양의 기술과 과학문명을 받아들이자.’ 라는 것이다. 서양의 좋은 것만을 받아들여서 점진적인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는 점과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전의 역사교육과 구별되는 차이를 보인다. 김흥수(1999), 「20세기 한국의 역사교육사」, 『歷史敎育』, 70, p. 153 참조.
사회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신분체제에 혼란이 오게 되고, 성리학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늘어가면서 중국사 이외 서양사에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여기에 선
문화가 다르고, 같은 나라라도 20년 전과 현재와는 작든 크든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여행담을 통해 여행은 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오오, 이런게 있었다니!’하는 마음을 독자에게 편안하게 알려준다.
더이상 절대 짧은 여행은 가고 싶지 않다. 관광명소만 들리는 몇박 몇일 여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