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십원가〉는 사람들이 쉽게 외워서 부르는 찬불가(讚佛歌)와 같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보현보살을 통하여 민중에게 불교를 전파하고자 한 누군가(균여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음)가 창작하여 민중에게 구전되어 오다가, 고려조에 이르러 《균여전》에 실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 때 지어졌는데도 그 표기가 향찰로 되어 있거나 향가의 형식을 갖춘 시가를 말한다. 향가계 여요는 향가와 고려가요를 연결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문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신라 때에 형성되어 발전한 향가는 고려 때 까지 계속되었다. 고려 광종 때 균여 대사가 지은 「보현십원가」는 고려
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
6.1.1 건국신화의 재현
◆ 건국신화의 재현 과정
- 신라 말 :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이 약화 , 항거 세력이 도처에서 나타남
- 진성여왕을 분기점으로 신라는 영토와 주민을 보존하기 어려운 처지로 떨어지고, 전국이 군웅할거의 터전이 되었다.
- 반락세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는 과거제도가 처음 실시되는 등 새로운 시대의 이념과 제도가 정립되는 가운데 이를 외면하고 지나치게 교조적인 경향을 보임으로써 향가의 역사적인 기능을 다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균여전』에 나타난 향가의 특성과 기능
①불교포교를 위한 발원 기원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