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잡지들에서의 이들의 관계는 문학과 사상운동과의 미분화, 즉 문학 고유의 독립성 및 자율성에 대한 직업적 인식적 미분화가 첫 번째 원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는 근대시 형성의 제반 과정들이 보다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근대시는 형식적
문학 내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개화기 시가의 형성과정에 나타난 특징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후자의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가 연역적이었다면 실제 창작에 의한 유형설정은 귀납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개화기 시가의 창작계층에 관한 연구는 그
장르 구분의 원칙
세속적인 예술과 성스러운 예술이 구분되어야 하며 또 비극적인 장르와 희극적인 장르가 구분되어야 하며 또 비극적인 장르와 희극적인 장르가 구분되어야 한다. .한 작품 안에 비극적인 요소와 희극적인 요소가 섞여서는 안 된다. 이 구분은 비단 장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평민과
시의 형태적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산문의 수준으로 후퇴하거나 시조나 창가들의 더 경직된 정형률로 나아간 것은 그의 장르의식이 애초부터 철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에 대한 그의 의욕이 그의 계몽의식에 비해서 진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당의 신체시가 근대시 형식의
근대시 그 중에서도 자유시(自由詩)의 시발점이며 나아가 다음세대에 전승시킬 싹이 돋아난 시기이므로 이 기점의 설정과 출발은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에서 우리 문학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한국 근대 문학의 초기적 양상을 제대로 규명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