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장인가, 개혁인가?)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개혁운동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1894년1월 초 농민전쟁의 시작에 이어 6월 말 청일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출범한 새로운 개혁정부는 조선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수행했다. 이를 당시에는 대경장(大更張)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빌려와
김홍집 내각, 제2차 박영효 내각, 제 3차 을미개혁으로 총 3차에 걸친 개혁이었다. 갑오개혁은 고위 관료로부터 시작된 내각이라는 점과 결국 일본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타율적인 개혁이라는 한계 앞에서 사람들의 지지와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를 다루어 보기로 한
갑오개혁은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 중심의 세계가 최종적으로 붕괴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던 광범한 제도 변혁이었다. 재정제도의 변화에 국한하더라도 대동법 이후 그 형식을 유지하고 있던 공납제도가 최종적으로 폐지되었으며, 궁내부가 창설되고 왕실재산의 관리
2. 서구적 조약체제의 도입
(1) 중국의 개방: 아편전쟁
○ 영국의 동방진출과 문제점
18세기 중엽 영국은 광동무역에서 모든 서방국가들을 압도하고 단연 우위 차지.
그러나 두 가지 문제점 발생
①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으로 인한 중국으로의 은의 유출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고 모직물을
김홍집· 어윤중 · 김윤식
부국강병을 위해 여러 개혁정책을 실현하되, 민씨정권과의 타협 아래 청 과의 사대외교를 종전대로 계속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자는 입장
급진 개화파
김옥균·박영효·서광범·홍영식
청에 대한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고 민씨정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