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675년)-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모아서 당나라를 쫓아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영토로 만든 당나라는 다시 신라까지 넘보았으나, 670년 신라가 먼저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공략, 나당전쟁으로 들어갔으며, 671년·675년, 그리고 676년에 군량보급 차단, 매소성전투, 기벌포대첩 등으로
나당전쟁(羅唐戰爭)이 일어났던 7세기의 경우 당시의 국제관계에 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고 그 연구 성과도 많은데 반해, 당(唐)과 신라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우호적이었던 8세기의 국제관계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당시의 나당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은 그 하위 주제들에
한국사에 있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4세기에서 7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를 3分하여 세력을 다투던 시대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는 3국이 각기 건국 초기의 부족국가적(部族國家的)인 틀에서 벗어나 고대 민족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때부터 고구려, 백제가 멸망하고 통일신라가 개막
< 1 >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고구려의 대외관계
1.5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고구려의 대외정책
1)5세기
a. 국제질서
439년에 북위가 5호 16국을 통일하였다. 그 결과 북위를 둘러싸고 중국의 남조 송과 북쪽의 유연, 서쪽의 토욕혼, 동쪽의 고구려는 서로 연결을 꾀하여 북위포위 견제
수입하려는 외교노선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자 외교노선을 변경하여 백제부흥전선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왜국은 위기의식을 느껴 큐슈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전역에 방위망을 구축하면서 667년에 왕도를 내륙의 오우미(近江)지방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