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들어가며
다산(多産) 정약용(丁若鏞)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실학자로서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가 한국 최대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
다산정약용이 서거한 지 99주년이 되는 해로서 이를 기념하여 정인보(鄭寅普), 문일평(文一平), 안재홍(安在鴻) 등이 다산의 학문을 정리한 것이 그 계기였다. 이들의 조선학운동의 일환으로 실학을 강조.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식민사학의 비판에 대항하여 실학을 근대적인 사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임지(任地)를 따라다니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익혔고, 그후 금정찰방(金井察訪)과 곡산군수로서 직접 백성을 다스렸으며 18년 동안의 강진 귀양살이를 통해 백성이 국가 권력과 관리의 횡포에 도저히 배겨내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배
+사회개혁
정약용은 당시의 사풍이 시부 만을 숭상하고 시무 에 밝지 못한 것을 비판하였다. 그는 참 선비의 학문은 본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케 하며 오랑캐를 물리치고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며 문에 능하고 무에도 능하여 적당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라고 하여, 시무에 능한자를 등용할
마른 목은 길쭉하여 따오기 같고
병든 살갗 주름져 닭살 같구나.
팔다리는 아직도 움직일 때련만
걸음을 혼자서 옮기지 못하네.
관가의 돈 궤짝 남이 볼까 숨기기 바쁜데
우리들 굶주리게 한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관가 마구간 살찐 저 말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피와 살이네
슬피 울며 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