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972 - 1836)은 조선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그의 사상 영역은 실로 방대하여 정치·경제에서부터 문학·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살았던 조선후기의 사정은 대내적으로는 사화와 당쟁이 거듭되고 정치·사회는 문란하여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극심
다산은 30대 초까지는 아직 젊은 중앙관료로서 경학사상 등 학문체계는 물론 사회현실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깊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도암행어사를 비롯하여 금정찰방 곡산부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농촌사회의 모순과 폐해를 직접 목격하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이를 실
Ⅰ. 서론
1. 연구의 목적
이 글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행정사상을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정약용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살았던 관료이며 사상가이고 탁월한 경학자(經學者)이며 경세학자(經世學者)이다. 여기에서는 그가 연구하여 확립한 거대한 경세학(經世學) 및 경세론(經世論)의 대
경학해석에 물꼬를 텄던 서계 박세당(朴世堂) 등이 활약했던 17세기는 서로 다른 학문적 관심과 배경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학파의 맹아기라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17세기에 싹텄던 실학적 문제의식과 사상적 요소들이 정리되어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
다산의 세계관과 문학이론
① 다산의 문학관
다산은 이조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그의 학문과 사상은 실학자로서 특징이 지어진다. 이전까지 다산의 문학론에 대해서는 실학이 성리학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하여 실학을 성리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하거나 혹은 性理學 대 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