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972 - 1836)은 조선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서 그의 사상 영역은 실로 방대하여 정치·경제에서부터 문학·천문지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살았던 조선후기의 사정은 대내적으로는 사화와 당쟁이 거듭되고 정치·사회는 문란하여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극심
사상 및 행정론이 행정학사적 맥락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산의 정치⋅행정사상에 대하여는 기존의 문헌과 논문이 많이 있고, 특히 세부적으로 인사개혁론, 지방행정개혁론 등등에 관한 논문 역시 많이 있다. 그리고 다산의 사상에 대하여는 별다른 이견 없이 기존의 연구
사상가에 비교하면서, 그들에 못지않은 민권사상가라고 평가하였다. 김용걸, 「조선후기 실학사상에 대한 회고와 전망」,『동양철학연구 19』, 동양철학연구회, 1998
한편, 한말의 각 신문에서도 다산에 관하여 소개하였다. <황성신문>은 1899년 4월 17일부터 2회에 걸쳐 다산의 경제사상을 단편적으로
따라 제시한 것이 정전제(井田制)와 여전론(閭田論)이다.
이 논문에서는 정약용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배경을 알아보고 그의 전반적인 경제사상을 알아보며, 또한 그의 경제사상중 큰 축을 이루는 토지개혁론인 정전론(井田論)와 여전론(閭田論)의 내용과 한계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상으로 말할 것같으면 주역, 經學에서 역사,문학뿐만 하니라 經濟와 지리에까지 두루 통달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니 그 학풍이 2백년이 다되가는 오늘날까지도 다산학으로 남아 빛나는 것이다. 무릇 천지간에 시류가 혼탁해져 옛글의 공묘로움과 옛사람의 바른 길을 찾을 수 없고 번쩍거리는 옷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