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색상에 있어서도 여전히 나타나며 성(聖)체계에 속하는 사찰이나 궁궐 건축에 사용된 단청의 오채도 이러한 음양오행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속(俗)의 체계에 속하는 민가들이 인위적 가공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천연색상을 활용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단청’이란 그림을 뜻하기도 하였다. 안압지(雁鴨池) 발굴 때 출토된 통일신라 암막새 기와 밑에 단청의 붓자국이 있는 것도 있었고, 단청할 때 물감을 담은 그릇 등도 출토되었다. 1123년(고려 인종 1) 고려에 와서 본 바를 기록한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 “궁궐 건물에 난간은 붉은 옻칠을
건축물에 이르기 까지 모든 물건이나 면벽이 색채와 무늬 즉 문양으로 이루어 지지 않은 형태는 없다. 이 문양은 고대의 많은 벽화와 유물들의 그림 속에서도 무수히 발견 되는데 이 때부터 우리 인간과 문양의 원초적 연관은 성립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수만종의 문양이 전래되어 왔고 또 현대는 현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색채관이 정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적 세계관이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음으로써 이전시대와는 변모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유교적 규범이 신분구조나 사회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귀족과 서민의 계층적 분리를 확연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색채관이 정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적 세계관이 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음으로써 이전시대와는 변모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유교적 규범이 신분구조나 사회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귀족과 서민의 계층적 분리를 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