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은 그를 계기로 ꡐ소농사회의 성숙ꡑ으로 그 발전방향이 집약되던 조선 농촌경제에 그와 전혀 상이한 유형의 서유럽적 근대가 접합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진정 한국적 근대의 출발을 알리는 起點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개항이 가져다 준 세계시장은 일본에
생애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명성황후의 정치참여과정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셋째, 제 3장에서는 명성황후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집권 초기와 중기 및 후기로 나누어서 기술하였다.
넷째, 제 4장은 본 연구의 결론 부분으로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였다.
<이하 생략>
열강의 침탈에 대한 동아시아 3개 국가 - 청, 일본, 조선 - 의 대응은 각기 달랐다. 청의 경우 무역은 허락하였으나 제국주의의 침략에 적대적 거부로 맞섰다. 조선은 19세기 중엽까지 천주교와 서구 문물에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상인 오페르트(Jacob Ernst Oppert)가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제국주의를 형성하는 것은 직접적인 ‘경제외적’ — 정치적, 군사적, 법률적 — 강압과 구별되는 경제적 지배이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있어서 경제외적 강제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선, 자본주의는 강압적 식민주의의 더욱 전형적인 형태를 확실히 벗
열강의 침투가 시작되자 대원군 시기에 이르러서 화약무기의 발전은 다시금 이루어진다. 이때에 ‘수뢰포’라는 일종의 시한폭탄이 개발되었고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 외에 ‘대․중․소포’라는 화포 역시 개발 되었는데, 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화포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