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이에 따라서 각처에서 의병의 봉기가 있었다.
그후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져서 일진일퇴하는 동안에 1599년 풍신수실이 병사하게 되자 일본군은 철수하게 되었다. 이로써 풍신수실의 교만과 탐욕에 의해서 도발되었던 7년간에 걸친 전란이 끝났으며 그것은 조선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정부에서 파견된 군 행정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즉, 조선왕조는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융통성 있고 영속적인 세련된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겠으나 만일 19세기 후반에 조선왕조가 쇠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 않았거나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로 제국주의 침탈이라
일본과 맺은 조선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 修好 通商 條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규정).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민씨 정권에 대한 도시 하층민의 불만과 별기군에 대한 차별로 인한 구식
조선의 문호개방은 단지 수교와 통상의 문제가 아닌 외압에 의한 내부적 사회제도의 변화와 국가체제의 개혁, 종래에는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로의 전락을 내포한 ‘강요된 근대체제로의 전화요구’라고 할 수 있겠다. 조일수호조규는 머지않아 조선이 개항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데 이는 일본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