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자 내부의 지점이다. 초자아는 실재계로, 내게 불가능한 요구들을 퍼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 실패를 조롱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작인이자, 내 ‘죄스러운’ 분투를 억누르고 그 요구들에 응하려 하면 할수록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유죄가 되는 그런 작인이다.
라캉은 초자아에 대
대타자 내부의 지점이다. 초자아는 실재계로, 내게 불가능한 요구들을 퍼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 실패를 조롱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작인이자, 내 ‘죄스러운’ 분투를 억누르고 그 요구들에 응하려 하면 할수록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유죄가 되는 그런 작인이다.
라캉은 초자아에 대
대타자(Other)다. 아버지는 상징계가 자신에게 부여한 위치를 지키며, 가족에게 각자의 위치를 지키도록 한다. 하지만 아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것임을 안 순간부터 아버지와 삼각관계가 된다. 아이는 어머니를 단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어져주길 바란다. 이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요컨대 그 결여는 단순한 무無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된다. 라캉은 ‘결여 위에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여를 통해 욕망이 생성되고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욕망에서 비롯되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즉 라캉이 보기에 언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