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의 개념은 한국적 토양에서 자라난 토착정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당대의 자생적 성장 가능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회의하고 있어, 이 시기에 대한 연구 자체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내재적발전론’ 측면에서의 연구는, 고종이 지휘하고 관료들에 의해 뒷받침됐던 광무 정
영환지략을 서술했다. 양무운동 시기의 동문관의 교과서였다.
등의 양무서(洋務書)를 읽으면서 바깥사정에 귀를 기울였고, 서양인 선교관과 고문관을 통해 서기를 수용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나름의 문명수용의 과정을 거쳐 군주가 직접 근대화 정책들을 추진한 것이다. 또한, 여러 차례의 보고를 통
근대화 합치 방향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서 자칫 왜곡되거나 편향적으로 평가되어 온 대한제국 시기의 한국근대화에 대한 투명한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역사학 연구에서 사료와 방법론을 통틀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서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다. 내재적발전론은 식민지
한국에서는 50~60년대에 일소되었다. 현대의 식민지근대화론은 개발 경제학에서 60~70년대의 생산 요소, 80년대의 내재적 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 성장 모델이 한국에 들어맞지 않자 90년대 들어서 결국 개발경제학자들이 제도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였는데, 한국은 근대적 사유재산 제도, 회사법, 행정-사
내재적발전론의 논리에 대해 확실한 근거로써 반박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한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 ―식민지근대화론과도 연장선상에 있는― 에 대해 흔히 오해를 하는 점은 이들의 입장이 일본이 대한민국을 근대화 시킨 것이라는 논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