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잇달았고, 결국 9개월 후인 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에 의해 붕괴되었다.
4.19는 광복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적인 시민운동이었다. ‘부정 선거 다시 하라’는 구호로 시작된 이러한 시민운동은 이승만 정권의 퇴진이라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낳았
년에는 ꡒ6월 여름에 우산국이 귀속되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한다ꡓ 고 밝히고 있다. 신라에 복속하게 된 우산국이 울릉도에만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그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포함된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1808年에 편
수 없는데, 우리는 거기에서 그들의 역사의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했다. 최근 일본 정부의 대외 정책은 신보수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독도 문제, 중학교 역사․공민 교과서 왜곡 등을 통해 신보수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독도를 기선으로 한 2백 해리 정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 EEZ) 때문이다.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만들게 되면 해양자원의 활용도가 높은 독도에서 해양심층수 등을 개발하여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렇듯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함에 있어 독도 그 자체에 대한 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1982년에 시발(始發)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80척의 배를 거느린 일본의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벌했다는 전설을 언급한다. 이것을「심상소학국사부도(1926)」에서 삽화로 설명하고 있는데 일본 황후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진상품을 바치는 신라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