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국가의 역할이 매우 강했다. 산업화가 위로부터, 국가에 의해 진행되었고, 보수적이고 봉건적 성격이 강했다.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독일의 부르주아는 힘이 약했다. 민족국가형성이 또한 늦었으며, 이 과업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비로써 1871년에 달성된다.
비스마르크 중심의 독일통일정책은
민족적 실망감이 뒤엉켜 돌격대와 같은 군대식 조직을 통해 사회적 긴장을 촉발하였고 이것이 파시즘 발생의 한 원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대공황 이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반자본주의’와 ‘반사회주의’를 동시에 표방한 파시즘은 독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책동에 실망한 대다수
국가의 지배적인 종파에 이견이 있는 자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고, 종교적 소수 집단은 도시에만 허용되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중세 말에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던 독일의 문화적 통일을 파괴함에 따라 독일 정치의 분권화는 더욱 강하될 수 밖에 없었다. 전게서, p79.
다만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통일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머지않아 다가올 현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김정은 정권은 핵 시험을 하고 있어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위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세계화 시대에 남북이 하나 되어 통일된 민족국가를 이루는 것이 지닐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교재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