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을 단순히 중국의 역사 속에 있었던 여러 사상가들의 논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자백가들의 사상이 거시적으로는 동양 문화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미시적으로는 한국 사회 더 좁게는 우리 한국
맹자요로》 등이 있다. 더욱이 71세로 생애를 마치던 해 3월, 《대학》의 ‘성의장’을 개정한 점으로 미루어 그의 《사서집주》에 대한 지정이 어느 정도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주자의 정치에 대한 의견은 <임오응조봉사>나 <무신봉사>에 나타나 있으며 또 절동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 대기근을 구제하
1. 표해록 요약
제주삼읍추쇄경차관(濟州三邑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파견된 최 부는 서기 1488년 (성종19년, 明 弘治元年, 1488년) 윤 정월에 부친상을 당해 서둘러 본토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추자도 앞바다 부근에서 표류하기 시작하여 13일간 폭풍우와 기아와 기갈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
사상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實學이란 단어의 용례 및 실학이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던 사상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들을 분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실학이라는 용어가 시대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음을 다음과 같이 확인하게 된다. 즉, 한국사상
Ⅰ.서론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는 그 자체 내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리고 영〮〮 ․ 정조 시대에 이르면 그 변화가 나름의 이론적 배경과 거기에 상응하는 운동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한국 사회가 자체 내의 구조적 모순을 상상적 기호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