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사물을 너무 닮으면 속되고,
사물에 지나치게 어긋나면 눈속임이 된다.”
동양회화의 철학적 배경
관계 ‘자아와 타자의 교류’
→ 체험
정경교융, 물아합일
강희안(姜希顔)의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소식이 주죽朱竹을 그리니
어떤 이가 소식에 물었다.
‘이 세상에 주
회화가 조선화로 지칭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대신 동양화로 부르게 하였다.
한국화는 종이나 비단 위에 먹이나 물에 녹는 안료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모필로 그리며, 동양적 자연관과 가치관에 바탕을 둔 회화관과 화론에 입각하여 주로 중국의 전통회화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선별적으
Ⅰ. 서론
산수화에는 `한`의 사상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진리관이 깃들어 있다. 고래로 한인들은 사물의 진리를 판단함에 있어 그 근본 중심을 부이성에 둔다. 이것은 한국인의 대물관에서 오는 시방식의 특성이다. 우리가 보는 산수는 주관 쪽에서 객관적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일
2. 청대의 예술
청대에는 회화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큰 진보을 이루었고, 서로 유기적으로 발전해 나갔다.건축에서는 건륭황제 초기에 출판된 <공정주법칙례>에 의하여 건축물의 구조가 규격화되었고, 유럽의 고전 양식 건물이 나타났다. 중국 고궁의 3대전(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이시기에
.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전래되었던 북송의 그림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중기에는 곽희(郭熙)의 화풍과 문인화론이 유입되어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도화원(圖畵院)의 설립과 이령(李寧)을 비롯한 화원들의 활약, 명승명소도 계열의 실경산수화 전통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