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도인 장기서의 집에서 병사한즉 선생의 혈통이 여기서 끊겼던 것이다. Ibid, p 266.
3)공주 장사
동학 포덕 33년 임진(1892) 7월 서인주, 서병학 등은 최해월 선생을 찾아 뵌 후 수운 선생의 신원운동을 역설하면서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대선생의 원을 펴고 하루 속히 현
특수한 평등사상으로서의 ‘대동’의 이념에 입각하여 토지를 공유로 하고 남녀 균등히 할당하며 전체 잉여물자를 공유로 하여 노유고과를 부양하는 등 차별과 대립이 없는 세계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며, 거병 이후 군대 내에서 실행해 왔던 것을 사회 일반에게 적용하려 한 것이다.
(중략)
있는 동안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변화는 없으나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그래서 육체와 유리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수면과 가사(假死)는 영혼의 일시적 부재(不在)상 태
농민층의 양극분해는 더욱 진전되어 빈농과 반프롤레타리아를 광범하게 창출시켰다. 한편 지주층은 소작료를 거둬들이는 쌀을 일본에 수출함으로써 새로운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농촌에 침투한 화폐경제를 이용하여 농민에 대한 고리대적 수탈을 강화해 나갔다. 부농층은 처음엔 자신이 구축해 왔
사상들로는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책”(포덕문)을 내기 위해서도 천명(天命)을 바르게 이해할 수있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여겨 당시의 여러 사상들을 정리ㆍ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유(儒)ㆍ불(佛)ㆍ선(仙)이 비록 뜻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