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기본 사상은 신앙주의와 성서주의에 입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나 신부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타율주의적, 간접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는 자율주의적 직접적 신앙으로의 변화를 추구함으로써 교권적 형식주의는 무너지고 개인적 내용주의가 등장하게 되었
의 출생과 유년기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출생연도도 1466년설과 1469년설이 있으며, 에라스므스 자신이 자기의 생년에 대하여 언급한 기록도 여러가지로 년도가 달리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1466년설에 따랐다. 에라스므스가 술회하고 있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 영주들은 매년 군사를 동원하여 이 거지떼들을 자기의 영지에서 쫓아내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업무가 될 정도로 심각해졌다. 사람들은 무정해졌고 강퍅해졌으며 폭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적으로 16세기 초엽의 유럽인들은 영적으로 신앙심이 매우
문제점을 가진다고는 여기지 않으므로, 이러한 큰 틀을 잡았다.
교회의 역사적 순간들에 있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는 여럿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종교개혁이며, 이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교회는 축적된 역사 안에서 연속적인 변화의 교회이며, 그 큰 변화중 하나가 16세기에 있었던 종
의 도움으로 바르트부르크성(城)에 숨어, 급진혁명가의 소요를 누르고 복음주의교회의 확립에 노력하였다. 특히 마르부르크회담에서는 성찬에 대해 일치를 얻지 못하고, 스위스 종교개혁자 U. 츠빙글리와도 결별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동맹의 꿈이 깨졌다. 루터는 최후까지 설교·강의·권고·저술에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