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종대왕과 박진영 사이의 상관성
그렇다면 세종대왕과 박진영의 인재양성리더십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까?
3.1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세종대왕도 박진영도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인재로 양성했다. 대표적으로 세종대왕은 당시 천민 신분의 노비였던 장영실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다.”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의 인물이 있는 것이다.”
정치분야 – 황희 (1363~1452)
특출한 정치사상 일관되게 주창, 적극적으로 실천
→ 세종과 태평성대를 이룩하는데 중추적 역할
음악분야 – 박연 (1378
리더십이 결정된다고 하여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란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 반면 특성이론 이후에 나온 행동이론과 상황이론에서는 행동적 혹은 상황적 요인에 대한 학습을 통하여 훌륭한 리더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의견을 펼치고 있어서 리더는 만들어가는 것이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인재의 등용
황희(黃喜)·맹사성(孟思誠)·허조(許稠) 등을 등용, 왕권과 신권(臣權)의 조화를 꾀함.
-6조 직계제
의정부(議政府)를 견제하면서 왕권의 안정을 확립.
- 집현전을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
젊은 학자를 등용하여 인재양성과 학문진흥을 꾀함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
세종이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
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