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천이 말하고 있는 “미국의 북장로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미 장로교회가 독일자유주의 신학의 파괴적인 주장들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결론짓는 것이 합리적이다. 메이천은 헤르만 교수
Ⅰ. 서 론
교회에 대한 메이천의 시각은 일부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세례파나 독립 교회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분의 관점은 신실한 개혁주의와 장로교 신학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론을 포함한 그분의 신학적인 시각은 주로 프린스톤 신학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지적하고 메이천박사를 중심하여 새로 출발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도록 권한 것은 박형룡박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과 사상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구 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맥락에 비추어서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제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
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죽산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은 구 프린스턴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천 박사의 신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신학적 배경은 일제 하 식민지통치에서 한 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
메이천은 1920년대와 1930년대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서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보수 연합세력의 결집인 근본주의 운동 지도자로 논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박형룡 박사는 신학적으로 1812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설립부터 1929년 이사회가 재편성되어 신학적 좌경화를 이루기 이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