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묘지명의 역사
: 중국 한나라 말기인 서기 205년 조조가 순장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지상의 비를 제한하자 그것의 축소판인 묘비를 만들어 매장한 것에서 유래, 이 후 남‧북조 시대에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고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수․ 당대에 걸쳐 더욱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3.역사적 사료로서의 묘지명
1).묘지명의 가치
-족보, 호구단자가 없는 상태에서 문집류를 제외하면 신빙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자료.
-가계, 행적이 자세하고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고려사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2).묘지명, 과연 믿을만한가??
-한 개인의 집에서 전해오
「부인이씨묘표」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50여년을 원망하지 않고 산 부인의 행적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자부이씨묘표」에서는 ‘恭謙’(공겸) ‘儉勤’(검근) 등과 같은 말을 통해 여성의 성품과 행실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강혜선, 앞의 논문.
이러한 묘지명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삶
묘지명을 요청하며 “부녀자의 행적을 금석에 싣는 것이 뭣하긴 하지만 차마 땅속에 그냥 매몰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동족의 인년을 빌어 후손들에게 길이 알려주는 글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에, 내가 허락하고 그 행장을 살펴보았다.
옛날에는 부인들에 대해서는 묘지명을 짓지
2. 무연분묘의 정리
우리나라 전체의 무연분묘는 500만기 이상으로 추정되며 총묘지의 약 30%를 차지한다. 여기다가 개인묘지, 공동묘지에서 계속 늘어나는 경향이어서 특별한 행정적 조치 없이는 국토의 상당부분이 무의미하게 방치될 뿐이다. 그래서 일정기간 모든 국민들에게 주지시킨 후 화장장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