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명은 남성의 묘지명처럼 획일화된 형식과 내용만을 서술하고 있었다.
3. 묘지명의 변화
3.1. 박지원의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은 연암 박지원이 누님을 위해 쓴 묘지명으로, 연암 스스로 이를 득의의 작품으로
묘지명을 요청하며 “부녀자의 행적을 금석에 싣는 것이 뭣하긴 하지만 차마 땅속에 그냥 매몰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동족의 인년을 빌어 후손들에게 길이 알려주는 글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에, 내가 허락하고 그 행장을 살펴보았다.
옛날에는 부인들에 대해서는 묘지명을 짓지
문학의 시발이라고 해도 무리가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는 단순한 과도기가 아니고,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특징을 가진 독자적인 시기이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3』, 지식 산업사, 1982, p.9
본고는 임병양란 이후의 국제정세와 조선 사회의 변동, 그로 인한 문학의 변화에서 오는 특징들에
문학이다. 한학자들의 파한(破閑)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시가이다. 한문구를 나열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이두를 사용했다. 내용은 퇴폐적, 고답적, 현실도피적이다. 일부 작품은 신진 사류들의 의욕적인 기개와 의식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권」, (지식산업사 1989) pp.18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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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좀 더 시야를 국한시켜 우리나라의 한문학을 정의하자면, 중국의 문자와 문학형식을 빌려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문학을 지칭할 수 있으니, 한자문화권에 속한 다른 나라의 한문학에 비하여 개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지금까지 국문학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