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진이다.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 이상화, 안석주 및 상기 네 사람을 더 가담시켜서 구성원들의 이름 두문자를 딴 PASKYUL
김기진, 김복진, 안석영, 이익상, 김형원 연학년 등의 구성원으로 하여 이들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단체의이름으로 삼은 <파스큘라(PASKYULA)>는 <염군사>보다 문학적 역량이 우위에 있고, 당시 문단에서의 영향력도 훨씬 컸다.
의 통합으로 이루어졌지만, 당시 새로운 창작경향을 내보이며 작품활동을
운동을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팔봉은 종래에 있던 일체의 문학을 부정하고 회월에게 모든 예술은 계급의 죄악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성 문단 파괴 동의는 시, 수필, 소설, 평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개된다.
팔봉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백수의 탄식」
문학사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만 일군(一群)의 시인들의 작품 중에는, 당시의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헤쳐 나갔던 치열한 삶의 행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들 작품들을 너그럽게 읽으면서 우리의 문학 유산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운동의 영향이 크다.
3.1운동을 전후한 민족 사회운동의 사상적 기조는 민족의식의 고취, 신교육의 확대, 민족산업 육성 등 애국적인 민족 개량주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 단체의 지도자들이 소시민적인 지식층이나 민족 자본가들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민족 운동의 성격 또한 그만